▣ 정남진 여행
정남진 장흥 답사
관산방촌
관서별곡의 백광홍
대덕읍
보림사
보림사2
부춘정
수문해수욕장
유치 자연 휴양림
유치 자연 휴양림2
장천재
장천재 동백숲과 여다지 해변
천관사
천관산 관광농원
천관산 자연 휴양림
천관산 억새능선
문학공원
정남진 문학향기
문학공원동인지
문학공원의 외지미인
정남진 귀족호도
정남진 귀족호도2
정남진 남포
정남진 봄의 전령 할미꽃
▣ 정남진 명산
천관산
천관산2
제암산
사자산
수인산
부용산
▣ 정남진 생활과 이야기
가슴앓이 전설
회진 앞바다

 

 

 

 

 

 

 

 

 

 

 

 

정남진 장흥 보림사 답사 탐방

 

 

하늘이 맑았다 한참을 흐렸다를 반복한다. 햇님이 구름속에서 나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구닥다리 카메라를 메고있는 이몸을 촬영하기 힘들게 적당히 괴롭히자 생각한 것 같다.

이젠, 흐린 하늘이 어둡게 밀려온다.

붕괴된 길을 돌아서 아름다운 보림사 일주문을 감상할 시간도 없이 옆 매표소로 곧바로

진입을 하고만다.

보림사는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 종찰로 널리 알려져있다.

민족의 블행인 육이오때 전남 지역의 공산군 유격대가 가지산에 집결하여 이곳 사찰에서

한 겨울을 났었다. 그 후 군경 토벌대에 의해 공비들의 본거지를 그냥 두었을 리 만무하여

불을 질러 버렸다 하니, 오호... 꺼꾸로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인가!

고된 세월에 말없이 버티고 있것만, 그 후에 모든 것은 말 많은 인간들의 몫이려니...

 

씰데없이 각설하고...

보조선사 체징이 옮겨온 후 가지산문 중심 도량으로 발전 되었다 전해진다.

잘난체 하며 덧붙이자면, 신라 통일후 미륵불이 하생한 불국토라는 믿음을 확신하면서 통일

왕국의 주도 이념으로 화엄불국토 건설의 꿈을 실현 하고자 힘을 하나로 모으는데 이용하며

불국사를 창건하고 화엄종찰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 후 왕실 위주의 엄격한 골품제의 신분 사회에서 진골 왕족의 절대적 권위에 눌린 육두품

이하 하층계급 들이 신분상승의 불가능과 신분의 제약을 뛰어 넘으려는 의지로 당에 유학길

을 오른다. 그 중엔 도의(道儀)선사 같은 유학승도 끼여 있었음을...

 

이때 당나라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선사가 달마선종을 크게 유행 시켰다.

그 후 5조 홍인(弘忍)에 이어 6조 혜능(慧能)의 남종선과 신수의 북종선으로 갈라진다.

혜능의 남종선은 조계산 보림사를 중심으로 남중국 전역으로 전파되어 나간다.

당나라로 건너갔던 신라 승려들이 "불입문자 직지인심"(不立文字 直指人心) 즉, 문자를

통하지 않고서도 사람의 마음을 깨우친다는 종지를 내건 선종에 자연스레 매료 되었다.

굳이 경전에 의하지 않고서도 자기의 마음을 깨달아 곧 부처가 된다는 ...

종래 귀족불교의 권위와 틀을 벗어난 현실에 새로운 혁신적 사상이 엄격한 골품제도에서

소외 당하던 이들에겐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후 그들은 선종, 특히 남종선의 선사들로부터 인가(印可)를 받고 신라로 돌아온다.

그가 바로 도의(道儀)선사다. 돌아온 도의는 허황된 논리라 비웃는 경주땅을 떠나 설악산

진전사로 들어가 입적하기 40년 동안 선정한다. 도의선사 제자가 염거, 다시 체징

(보조선사)으로 이어지며 보조선사 체징이 장흥 가지산사에 선종을 세운다.

보조선사 체징도 당으로 유학길에 오르지만 도의선사의 법 밖에 다른법이 없음을 깨닫고

삼년만에 다시 신라로 돌아오게 된다. -참고자료. 네이버 검색, 답사의 길잡이 -

 

8세기 후반부터 통일신라는 잦은 왕실 내분과 왕권의 다툼으로 진골왕족의 절대적

권위가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화엄사상의 이념적 가치가 흔들리면서 지방

호족들이 경제적 힘을 기반으로 점점 강성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에겐 새로운 이념

이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때, 새롭게 등장하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선종의 사상에 딱

들어맞아 지면서 천생연분의 궁합이 짝지어 지게 된다.

이때부터 화엄종과는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부도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뛰어난 경제력을 기반으로 철불을 주조하기에 이르게 된다.

해서 중국, 인도와 함께 삼보림으로 알려진 보림사는 남원 실상사, 문경 봉암사, 영월 흥년사,

곡성 태안사 등등.. 과 더불어 선종사찰의 본산이라 할 수 있다.

 

습기 녹녹한 어두운 발길을 옮기며 천왕문을 향해 걷는다.

우리나라에서 목각 사천왕상 가운데 제일 오래된 분들이라 다시한번 합장하고 꼼꼼히

살펴 보지만, 금방 칠해 놓은듯 형형색색의 칼라가 호화롭게 칠해져 있음에 의아 했지만

그럼... 훼손이 심해 옛 모습 그대로 최근에 다시 고쳐 불사한 것이라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미 오래전에 고쳐 조성하다 국보급 희귀본을 포함해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언해

보물들을 포함해서 고서 250여권이 발견 되었다니... 그동안 짐짓 모른척 무서운 눈을

부라리곤 짖굿은 내숭을 떨어가며 몸속에는 그 많은 보물을 감추고 있었다 생각하니

재미있는 상상이 아닌가!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

다른 사천왕상과 달리 눈동자위가 살아있다. 그 눈동자에 유리를 박아 넣은 효과가 생명을 불어 넣었음을...

 

 

남방- 증장천왕, 동방- 지국천왕

자료마다 모양과 들고있는 소품에 따라 해석을 달리한다 하여 동행 아우님 다운 깔끔한(?)

해석이 와 닿는다.

"다들 약간씩 틀리게 되어 있으니 내는 그때 마다 설명해 놓은 그대로 믿을라요!"

ㅎㅎㅎ 잘났다...증말!

 

 

삼층석탑과 석등(국보 44호)

 

대적광전 앞에 단아하게 놓여있는 석탑 두 기와 그사이에 가득찬 사랑의 공간, 그 틈새에

알 듯 모를 듯 놀고있는 석등까지 희미해진 날씨와 함께 그동안 여정에 피곤함을 씻겨주듯

잔잔함이 전해져 온다. 일금당 쌍탑과 석등, 전형적 통일신라 양식에 두 탑 모두 온전한

상륜부의 부재들을 잘 갖추고 있다.

해가 저물어져 날씨가 어두워진 것인지는 몰라도 흐린날에 마주하는 석탑과 석등에 차분한

느낌이 된다. 부처님 계시는 곳이 아니라 해도, 어쩌면 불자가 아니라 해도 저절로 고개 숙여

지는 숙연함이 배여 나온다. 이상하리만치 어루만져 보고픈 충동과 그 내면의 그리움과 설레

임이 있다.

그 옛날 빛바랜 단란한 가족사진을 감상하는 느낌이라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지대석 위에 이중 기단과 그 위에 몸돌이 있으며 폴폴 튀는 끼를 억누르는 순 내숭쟁이

기질의 느낌을 얇은 지붕돌의 반전된 모서리에서 찾는다.

남원 실상사의 쌍탑보다 규모가 훨씬 작으며 건강미도 조금 모자라지만 훨씬 편하게

보는이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붕돌 층급받침이 5단으로 여전히 신라탑의 전형을 취하고 있지만, 작은 크기와 지붕돌의

모서리 반전이 심하며, 상층기단 굄대 두단 가운데 한단이 둥글게 변한걸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걸로 보인다.

그 쌍탑 가운데 외소한 체격의 단아한 석등 하나가 많은 장식을 두르고 놓여있다.

복련 조각의 하대석과 앙련의 상대석, 그위 불을 밝히는 화사석 위에 온전한 지붕돌이 있다.

지붕돌의 각각 여덟 모서리를 돌아가며 작은 귀꽃이 있으며 처마끝에 턱을주어 빗물을

그곳에서 멈추도록 되어있다.

 

 

처놓은 울타리를 넘어 가까이 가고픈 충동이 일었으나 양반 가문의 자손이라 억누르며

참고 지붕돌 모서리를 앵글로 당겨서 감상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대적광전의 철조 비로자나불을 본다.

온통 어두운곳 뿐이다. 희미하게 불을밝힌 조명아래 검은 철불이 무겁게 놓여있다.

어둠 속에서 긴장감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모든 번뇌를 끊고 내 기쁨안에 들라는 뜻인가!

맘 같아선 후다닥 들어가 불을 올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다들 그냥 넘기는걸

별시럽게 혼자 설친다 할까 참고 있자니 예쁘게 생긴 처사님 나를 밀치고 높은 힐을

참하게 벗어 놓은채 들어가 합장하곤 배례를 올리기 시작한다.

같이 들어가 옆에서 박자 맞추어 절을 하면 이것도 인연인데... 하며 작업(?)을...

미천한 중생에게 입력된 저잦거리 머리는 한계가 있는가 보다! ㅋㅋ

 


대웅보전 - 그 옛터위에 그 주초 그대로 다시 불사를 해 놓았다.

 

나는 항상 어딜 가더라도 풍경의 그림은 놓치지 않는다. 어두운 그늘 속에 배여있는 색상을

담고자 구닥다리 카메라로 일 초 동안 흔들리지 않고 숨을 참기란 나 뿐인가 하노라!

 

이 동행들은 모두들 보이질 않는다. 제각각 따로 노는 것이렸다.

그럼 나도 붕어새끼들 노니는 그 물을 한 바가지 맛있게 목으로 넘기고 보조선사 체징 부도로

향하니 이미 두 님들께선 서로 궁시렁 거리며 입을 맞추고 있다.

 

 

이미 부도를 감상하고 있는 두 님의 뒤를 따라 먼저 거쳐 갔을 부도비의 돌거북만 후다닥

카메라에 담았다.

잠시도 가만 있질 못하곤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콧구멍에 수염이 치사하게 돋아 있고,

눈꼬리가 위로 치켜져 내 어릴적 동무처럼 심술굳게 생겨 먹고는 '나 살아 있다.'말하는듯

하다.

등에는 육각의 구갑문이 질서정연하게 조각되어있다.

 


보조선사 체징 부도

하나하나 디테일 한 부분까지 섬세하다만 지붕돌이 무겁게 생겼다. 모서리 귀꽃과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며 기왓골을 새겨 넣어 가까이서 보면 감상 할 것이 많으나 지붕돌의 넓은 두깨와

작게 축소된 듯 한 크기에 아랫 조각의 오밀조밀함이 죄송스러운가...

그 끝에서 검소함을 연출 해 놓은 것이렸다.

그래도 보는 눈높이에 맞추어 전체적 비례가 들여 맞는걸 보면 미적 조형물의 감으로도

휼륭한 것 아닌가...

 

순간 길잡이^&^ 아우님을 따라 한참을 헤맨 끝에 간곳이 동부도밭.

층층의 계단논 처럼 어떤 부도는 짝지어져 놓여있고, 어떤 부도는 외롭기 그지없는 홀아비

처럼 홀로 곱지않은 시선으로 서 있다. 어떤 것은 만삭의 아낙처럼 배 불뚝이 부도, 날씬

경쾌한 부도 등등.. 흐린 하늘을 이고, 잘 경작된 땅위에 희미한 그림자 하나없이

붙어 하나 되어 있다. 불쑥불쑥 간간히 영역 표시도 하면서...

 

이 높이 부도 주인공의 제자가 요기 아래 부도이고, 그 위에위에 부도가 더 큰 스님 부도고...

히히락락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르는 우리들의 소설도 이만 하면 베스트셀러 감이다.

 

 

 

"보림사"


빈궁과 영달은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쉽게 구하랴.
내가 좋아하는 대로 유유히 지내리라.
술잔을 빗자루 삼아 시름을 쓸어 버리고
달을 낚시 삼아 시를 낚아 올리네.